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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00年前의 思夫曲

윤정의 일상 2008. 5. 28. 22:24

 400년전의 思夫曲 (죽은 낭군을 그리워하며)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몇년전 추석무렵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
고성 이씨 분묘 이장시에 발견한 미이라와 유품들을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시신을 염할 때 입혔던 옷가지 등이 우리 복식사나 풍습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하여
TV에 방영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미이라의 주인공인 이응태의 부인이 죽은 남편에게 보낸 한글 편지 한통이
1998년 4월 -- 412년 만에 같이 공개되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눈물로 쓴 400년 전의 사부곡(思夫曲)

사부곡(思夫曲)은 죽은 남편을 못 잊어 그리워하는 아내의 가슴 도려내는 그리움의
읊음이다

지난 1998년 4월 경북 안동시 정상동의 한 양반가의  오래된 묘지를 이장하던 중
무덤 안에서 조선 중기에 쓴 한 여인의 한글편지가 한 통 발견되었다.
412년이라는 세월을 넘어서 세상에 알려진 이 편지는 조선조 명종과 선조 때 살았던
경남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응태의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간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죽은 남편의 품에 넣어준 만사(輓詞)이다.

※만사(輓詞)-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심정을 적은 글  輓-수레끌만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어찌 나를 두고 당신이 먼저 가십니까?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몰래 와서 당신모습 보여 주세요.....』라며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과 생전의 각별했던 부부애를 애틋한 필체로 표현하고 있는
죽은 남편을 그리는 사부곡(思夫曲)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586년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해 임종 후 장례 전날까지의 짧은 시간에 써 내려간 이 글은 원지 절반 크기의
한지에 촘촘하게 적혀 있다.
하고픈 말이 더 있는데 쓸 종이의 지면이 부족하자 종이를 옆으로 돌려 상단 남은
부분에 다시 빼곡하게 적을 정도로 지아비를 그리는 아내의 애절한 마음이 곳곳에
담겨 있다.

또 무덤 안에는 저승 갈 때 신고 가라고 이 씨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줄기와 함께 정성껏 역은 미투리와 남편이 소중히 여겼던 아직 태어나지 않는
복 중의 아이에게 줄 배냇저고리까지 함께 들어 있어 죽은 남편의 넋을 위로하려는
각별했던 정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남편을 그리워한 이 씨 부인이 정작 어디에 묻혀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이 기사는 전하고 있다.

이 편지는 당시 엄격한 남녀유별의 유교사상 속에서 이처럼 때 묻지 않고 허물없는
애정표현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뜻밖이지만 무엇보다도 아내와 남편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또 존중했던 당시 조선사회의 남녀 평등한 사고 관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았지만 정신만은 영원히 함께 하고자 소망했던 이응태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툭하면 이혼하고 자기만 위로 받으려는 이기주의 생각으로
나날이 엷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부부와 가족 간에 대한  사랑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400년 전 진실로 서로 사랑하며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 해로하고자 소망했던
이응태 부부. 비록 육신은 떨어져 있을지언정 그들의 영혼만은 지난400년 동안에도
줄곧 함께였을 것이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이응태 부부의 사랑, 긴 어둠의 세월 속에서 이 사랑을
지켜온 것은 아내가 써서 가슴에 고이 품어주었던 마지막 편지였다.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 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아래 또 있겠습니까. ?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 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자료 출처 / "서예 세상" 카페에서 펌)


 

세상풍파 겪으며 인생을 살만큼 살지도 않았고, 
그래서 어느 정도 죽음에 너그러워 지지도 않았을 젊은 나이에 그 사랑을 시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찾아온 남편의 죽음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사건 앞에서, 
이런 편지를 써서 관에 넣을 생각을 하였다니
남편을 향한 아내의 사랑을 십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영원히 결별하는 마지막 절차를 앞두고 도무지 경황이 없었을텐데 꿈 속에서나마 
나타나 생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목소리 들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홀몸도 아니었던
미망인의 이별 의식은 몰래와서 보여달라는 애절함으로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헤어짐이 잦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낭만을 듣고 보기 힘든게 사실 아닙니까.
신발을 바꿔신 듯 아무런 부담없이 함부로 사랑을 바꾸고 가버린 사랑의 뒤에
저주 밖에는 쏟아부을 줄 모르는 험한 꼴을 보고 사는게 일반적인 일이지요. 
이런 세상을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문득 412년 전의 편지 한 장이 시공을 넘어 배달되어 
부부애의 고귀한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 "자네"라는 표현이 13회나 나왔대서
.. 400여년 전에 "자네"라는 호칭이 가능한가라는 논란이 있었고
.. 양반가에는 남녀평등이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만
.. 저의 소견으로는 처가쪽 지위가 높아서.. 역학관계가 동등해졌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 TV 특집을 보면서.. 저는 대단한 여인이라며 찬탄을 하였으며
.. 편지 한장이.. 400년전의 女心을 보여주다니 놀라울 뿐 입니다.
.. 꿈속에 꼭 나타나.. 답을 주라는 애절한 사랑.. 안타갑습니다.  

안동댐(보조댐)의 월영교는
이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을 기리기 위한 사랑의 다리 입니다.

  *안동의 명물 월영교*
월영교는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한 전설이 서린 다리입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남편의 미투리를 삼았던
지어미의 애절하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한 켤레의 미투리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애절하여 옮겨봅니다.

중년에 이른 우리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오늘은 내반쪽의 손을 꼬옥 잡아 줍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을 실어서....


출처 : 한빛
글쓴이 : 한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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