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의 마음으로 / 이해인
참회의 눈물로 뿌리를
내려 하늘과 화해하는 나무의 마음으로 선다
천만 번을 가져도 내가 늘 목마를 당신 보고 싶으면
미류나무 끝에 앉은 겨울 바람으로 내가 운다
당신이 빛일수록 더 짙은 어둠의 나
이 세상
누구와도 닮은 일 없는 폭풍 같은 당신을 알아 편할 길 없다
오늘은 엇갈리는 만남의 비극 속에 내일은 열리는가
땅 위의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존재의 끝은 당신
편히 잠들 날 없는 가장 정직한 나무의 마음으로
당신 앞에 선다

길 / 이해인
아무래도 혼자서는 숨이 찬 세월
가는 길 마음 길 둘 다 좁아서
발걸음이 생각보단 무척 더디네
갈수록
힘에 겨워 내가 무거워
어느 숲에 머물다가 내가 찾은새 무늬 고운 새를 이고 먼 길을 가네

나의 하늘은 / 이해인
그 푸른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그
들판에서 꿈을 꾸는 내 마음 파랗게 파랗게 부서지지 않는 빛깔
하늘은 희망을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까지 낸다
내가 물을 많이 퍼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다시 겨울 아침에 / 이해인
몸 마음 많이 아픈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놓고 간 눈물이
내 안에 들어와 보석이 되느라고 밤새 뒤척이는 괴로운 신음소리
내가 듣고 내가 놀라 잠들지 못하네
힘들게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의 기침소리
알아듣는 작은 새 한 마리 나를 반기고
어떻게 살까 묻지 않아도
오늘은 희망이라고
깃을 치는 아침 인사에
나는 웃으며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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