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모습

윤정의 일상 2008. 11. 6. 16:39
 

박정희의 마지막 모습




---------------------------- --------------------
박정희가 엉거주춤 일어선 김재규로부터 가슴에 최초 의 한 발을 맞았을 때 대통령의 왼편에 앉아 있던
 심수봉은 기타를 치 우려 몸을 약간 빼려고 했다. 그때 대통령의 이마가 식탁에 닿을 정도 로 스르르
상체가 숙여졌다.

심수봉이 기타를 왼쪽 벽에 세우고 돌아와 자신 쪽으로 쓰러진 박 정희의 몸을 부축하여 앉히면서 비명
을 질렀다. 신재순은 일어나 심수봉쪽으로 가서 대통령의 등에 손을 댔다. 뜨거운게 물컹 잡혔다.
 피였다. 한 차례 총성이 멎자 실내 화장실로 피했던 차지철이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만 내밀고는
"각하, 괜찮습니까"라고 물었다. 신재순이 보니 총맞은 차지철의 오른 손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난 괜찮아.".
대통령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심수봉이 앉았던 방석이 대통령의 유혈로 적셔졌다. 신양은 손수건 같은
것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손을 피가 솟고있는 대통령의 등에 꼭 댔다. 신재순의 손가락 사이로 선
혈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박정희의 숨소리는 "크르렁,크르렁"하고 있었다.
"각하, 정말 괜찮습니까?".  신양이 물었다.
신재순이 대통령의 등에서 솟고 있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으면서 "각하 정말 괜찮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 "응, 나는 괜찮아"는 그가 이승에 남긴 마지막 육성이 되었다. 지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는 신재순(41세)은 이 말엔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여기를 빨리 피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느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 다. 일국의 대통령이시니까 역시 절박한
순간에도 우리를 더 생각해 주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27일 새벽 김종필이 연락을 받고 청와대에 갔을 때 김계원은 간 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실토하면서
 "각하께서는 그 상황에서도 여자 아이들 걱정을 하십디다"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마루로 피해나온
김 실장은 대통령이 "난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을 다 듣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각하, 진짜 괜찮습니까?". 신재순, 심수봉 두 여자가 번갈아 물었다. 이제는 대답이 없었 다.
대통령의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정보부장 의전비서관 박흥주대령은 이기주 유성옥과 함께 대통령 경호원들을 죽이기 위해서 주방 안으로
 집중사격을 가한 뒤 안이 조 용해지자 나동 건물을 오른편으로 돌아서 현관 앞으로 뛰어갔다. 어 두운
잔디밭에서 흰 와이셔츠 차림의 김재규가 황급하게 뭔가를 작 동시키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구부린
 자세로 양손을 비비는것 같 았다. 불발된 권총의 노리쇠를 앞뒤로 진퇴시키려 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다가간 박흥주 대령은 "박 비서관입니다"라고 하면서 김재규 의 두 팔을 잡으려고 했다. 김재규는 박대령의 손부터 보았는데 총 이 없었다. 그는 팔꿈치로 박대령을 밀고는 다시 현관안으로 뛰어들 어갔다.
현관에는 위에 달려 앞뒤로 흔들거리는 쪽문이 붙어 있었 다. 박흥주가 그 쪽문 사이로 보니 안쪽 마루에
서 양복 상의를 벗은 김계원 실장이 안방에서 나와 후다닥 뛰는 것이었다. 황급히 피하는 모습이었다.

이때 김재규는 차지철이 권총을 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간 마음이 급한게 아니었다.
고장난 권총을 고치지도 못하 고 현관에서 마루로 다시 뛰어들어가는데 플래시를 든 박선호의전과 장과
마주쳤다. 박과장은 대기실에서 두 경호관을 사살하고 마루로 나와 있었다. 그의 오른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김재규는 들고 있던 자신의 권총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박선호의 권총을 낚아채더 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직전 차 실장이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경호원, 경호원"하면서 문쪽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차지철이 흘리는 피가 오른쪽 벽 아래 를 따라서 선을 그렸다. 차지철이 문으로 뛰어나가려는 찰나에 권총 을
들고 들어오는 김재규와 딱 맞서게 되었다. 김재규가 박선호로부 터 받아든 38구경 리벌버 5연발권총에는
 세발이 장전되어 있었다.원 래 다섯발이 장전되어 있었는데 박선호가 두발을 쏘았던 것이다.
차 지철은 안쪽 병풍 옆에 있던 장식용 문갑을 방패처럼 치켜들었다.
"김 부장, 김 부장.".
차지철은 애원하고 있었다. 그는 문갑을 앞세우고 김재규를 향해 덤벼들었다. 김재규는 차실장의 가슴을 향해서 한발을 발사했다. 탄 도검사 결과에 따르면 피격 당시 차지철은 문갑을 들고 자세를 낮추 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오른쪽 가슴 상부에서 들어간 총탄은 허파 부 위를 지나 왼쪽 등 아래로진행하다가 몸속에 멈추었다
(육군과학수사 연구소법의과장 정상우소령의 사체검안서에 따르면 이 제2탄이 치명 상으로서 혈흉에
 의한 호흡부전과 심장부전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 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이게 사실이라면 한
20여분 뒤에 일어난 김태원에 의한 두 발의 총격은 확인사살이 아니라 이미 죽었 거나 죽을 사람에 대한
사격이란 뜻이 된다).

차실장은잡고 있던 문 갑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문갑 속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졌다. 이때 심수봉이 박정희 곁을 떠나 방안을 뛰쳐나 갔다.
김재규는 다음 순간에 벌어진 상황을 1979년11월8일에 작성한 제2차 자필진술조서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차 실장을 거꾸러뜨리고 앞을 보니 대통령은 여자의 무릎에 머 리를 대고있어 식탁을 왼쪽으로 돌아서
 대통령이 있는 데로 가자 거 기에 앉아 있던 여자가 본인의 얼굴을 쳐다보며 공포에 떠는 눈초리 로
보고있어 총을 대통령 머리에서 약50센티미터까지 가까이 대고 1 발을 발사하여 대통령을 즉사시키고
나온 것이 기억이 되며…>.

제2탄은 박정희의 오른쪽 귀 위로 들어가 뇌수를 관통하고 콧잔 등까지 나와서 살속에서 멈추었다.
이것이 치명상이 되었지만 즉사는 아니고 아직 생명은 붙어 있었다. 끝까지 대통령 곁을 지킨 신재순은
 김재규가 방에 들어올 때 발밑으로 푹 파인 아래 쪽으로 숨었다가 차 지철을 쏘는 총성을 듣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박정희를 향해서 다가오는 김재규와 눈이 마주쳤다.신재순은 지금도 "그것은 인간의 눈 이
아니라 미친 동물의 눈이었다"고기억한다. 그녀는 김재규가 박정 희의 머리에 총을 갖다대었을 때는
´이제는 나도 죽는구나´하고 후다 닥 일어났다. 실내 화장실을 향해서 뛰는 그녀의 등뒤에서 총성.
귀가 멍멍하고 잠깐 정신이 나갔다가 깨어보니 주위가 조용했다.방안은 화 약냄새로 자욱했다. 신양은
실내 화장실 안에서 문을 잠그고도 손잡 이를 꼭 잡고 있었다 . 김재규가 박정희의 머리를 향해 쏜
총탄은 이 5연발 리벌버의 네번째 총탄이었다.

김계원은 김재규가 차실장과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나올 때 까지 마루에 서 있었다. 이 마루와
만찬장은 붙어있고 마루에서는 열 려 있던 문을 통해서 방안에서 김재규가 차실장과 대통령을 쏘는것을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김재규와 그 부하들이 총질을 해대는 가운데서 무장하지 않은 김계원이 취한
피신행동을 어느 정도 비판 할수 있을지는 쟁점으로 남는다.

김계원은 ´낭하에 나가서 불을 켜려고 했다. 대 기실,주방, 만찬장 사이의 중간지점에 있는 화장실 입구에 머리를 대 고 멍하니 서있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김재규가 다시 방으로 들 어가는 것은 못 보았고
 전깃불이 다시 켜지고 방안에서 ´총성과 싸우 는 소리가 나고 쾅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나고, 내가
 방안으로 들어가 려는데 나오는 김재규와 마주쳤다´는 것이다.

마루에서 두 사람이 스치면서 나눈 대화에 대해서 김재규는 합수 부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1979년11월8일 2차자필진술조서).

[본인: 나는 한다면 합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보안 유지를 철 저히 하십시오. 김계원: 뭐라고 하지.
 본인: 각하께서 과로로 졸도 했다고 하든지 적당히 하십시오. 김계원: 알았어.].

김계원은 법정에서 "그때 김재규가 총을 들고 살기가 등등하여 그 장소를 모면하기 위하여 ´알았어´
라고 한 것뿐이다"라고 증언했다




총구 앞에서, 그리고 가슴을 관통당하고서, 또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다가오는 제2탄을 기다리면서
박정희가 보여준 행동은 세계 암살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초인적인 모습이었다. 김재규의 벽력 같은
고함과 차지철 을 쏜 첫 총성, 그리고 한 4초간의 여유. 이때 박정희는 "뭣들 하는 거 야"란 말 한 마디만
남기고 그냥 눈을 감고 정좌하고 가만히 있다가 김 재규의 총탄을 가슴으로 받았다. 그리고
"난 괜찮아"란 말을 두 번 했다.

우선 이런 행동의 목격자인 두 여인의 합수부 진술을 검토하고 지금 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신재순의 기억을 되살려 이것이 사실인 가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이런 무모하리만치
태연한 행동이 가능했던가. 그날 밤 시버스리걸 한 병 반을 주로 김계원 박정희 두 사람이 한 시간 40분
사 이에 마셨으니 주기가 올라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주량이 엄청난 박정 희는 총격 직전까지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았고 그의 언동은 정상이었 다.

거의 같은 양의 술을 마신 김계원은 총성이 나자 마루로 피신했고 그 날 밤 정상적으로 행동했다.
따라서 술 기운으로 해서 그런 ´무모한´ 행 동이 가능했으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박정희의 불가사의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자는 총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포천의 실탄사격장에 가서 권총사격도 해보 았다. 6·25때 허리에 총상을 당했던 손장래(전 안기부 2차장)
장군은 "벌겋게 달군 쇠갈구리로 푹 쑤셨다가 빼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머리를 스치는 가벼운 파편상을 입고 기절한 경험을 가진 이병형(전 2군 사령관)장군은 "발뒷꿈치에
총상을 당했을 때는 쇠몽둥이로 뒤통수 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박대통령의 최후는
체험으로 써 단련된 고귀한 정신력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준다"고 이병형장군은 말 했다.

가슴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은 박정희가 어떻게 그 고통을 누르고 "난 괜찮아"라고 할 수 있었을까는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는다. 박정희는 시저가 암살단에 낀 브루터스에게 말했던
원망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2년 전에 암살당한 이스라엘의 라빈수상이 박정희와 비슷한 말을 남기고 운명한 사람이다. 가슴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아프긴 한데 별것 아니야"라고 말한 뒤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했다. 기자는
이 라빈수상이 암살되기 하루 전에 마지막 인터뷰를 했었다. 라빈의 인상은 박정희와 흡사했다.
 단아하고 소탈한 모습. 어렵게 태어난 국가의 짐을 고독하게 지고 걸어가다가 동족의 총탄에 맞아
죽어간 모습까지도 비슷 하였다. 라빈수상은 참모총장시절이던 1966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박대통령을
만났었다.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박정희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하였다.

박정희는 설마 나를 쏘겠는가 하는 자신감 때문에 피신동작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눈앞에서 총격이 이루어지고 피를 쏟으며 경호실장이 달아나고 하는 아수라장이 벌어질 때는
계산보다 본능적인, 조건반사적인 행동에 지배당한다. 박정희의 태연자약한 행동은 그의 본능으로
내면화된 사생관과 지도자도의 자연스런 발로였다고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남 앞에서는 부끄럼 타고 누가 면전에서 칭찬을 하면 쑥스러워 하고 육영수와 선을 보러 갈 때는
가슴이 떨려서 소주를 마시고 간 사람 이었지만 죽음과 대면할 때는 항상 의연했다. 그는 여순반란사건
 이후에 군내 남로당 조직 수사에 연루되어 체포되고 전기고문을 당한 뒤에 수사 책임자 백선엽 정보
국장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박정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백선엽과 수사실무자 김안일은 지옥의 문턱에 서서 구원을
요청하던 박정희의 모습은 전혀 비굴하지가 않았고 의연했다고 전한다. 백 선엽장군은 "도와드리지요
"하는 말이 무심코 나오더라고 회고했다. 인격이 그를 살린 것이었다. 1961년5월16일 새벽 한강
 다리위에서 혁명군 선발대를 저지하는 헌병들의 사격이 쏟아질 때도 박정희는 태연했다. 1974 년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의 총탄이 날아올 때, 육영수가 피격되어 실려가고나서 연설을 계속할 때
그는 비정하리만큼 냉정했다.

10월26일 밤 나타난 박정희의 행동은 이런 과거행태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지 그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 사선을 넘나들면서 죽음과 친해지고 그 죽음을 끊임없이
사색하여 드디어 죽음과 친구가 되어버린 박정희. 그가 제1탄을 가슴에 맞고서 제2탄을 기다릴 때까지
의 시간은 1분 내외였을 것이다. 이 시간에 그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허파 관통상을 당하면 허파의 혈관이 터져 다량의 출혈이 생기고 호흡이 곤란하게 된다.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면서 숨이 찬다. 이 상태에서 도 한 10분간은 의식을 유지할 수가 있다. 박정희의 사망진단서
를 끊었던 국군서울지구병원 김병수 원장은 "김재규가 제2탄을 발사하려고 권총 을 갖다 대었을 때
박정희는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거부할 힘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 1분을 기다렸다는 얘기다.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증언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 에는 자신의 생애, 그 중요한 장면들
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간다는 것이다. 이 1분 사이 박정희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던 장면들은
무엇이 었을까.

어머니의 얼굴. 며느리를 둘이나 본 44세의 나이에 박정희를 임신한 것이 부끄러워 이 생명을 지우려고
간장을 두 사발이나 마시고 기절했던 어머니는 효과가 없자 언덕에서 뛰어내리고 디딜방아를 배에
올려놓고 뒤로 넘어지기도 했으나 뱃속의 생명은 죽어주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태어나지 못할 뻔했던
생명´이 태어났고 그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운명 이 바뀌었다.

이00 여인의 얼굴. 첫 부인과 별거한 뒤에 장교시절에 만나 동거했던 이여인은 박정희가 숙군수사에
 걸려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생환하여 군복을 벗었을 때 문관신분으로 겨우 군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던 이 죄끄만 장교를 버렸다. 집을 나간 이여인을 찾아헤매던 때 박정희의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병을
 얻어 죽었다.

직장, 연인, 어머니를 동시에 잃었던 이 시기의 박정희를 구해준 것은 김일성이었다. 그의 남침이
박정희를 살렸고 그 박정희에 의해서 김일성의 북한은 몰락의 길로 들어 서게 된다. 역사의 오묘한
복수인가.

육영수의 얼굴. 맞선을 보는 날 육영수는 박정희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다고 한다.

"군화를 벗고 계시는 뒷모습이 말할 수 없이 든든해 보였어요. 사람은 얼굴로는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으로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에요.".

궁정동에서 박정희가 보여준 최후의 모습이 바로 그의 뒷모습일 것이다.



박정희의 뇌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영상은 아마도 소복 입고 손짓하는 육영수였을 것이다. 가난과 망국과 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속에 큰 응어리로 뭉쳐두었던 한의 덩어리를 뇌관으로 삼아 잠자던 민족의
에너 지를 폭발시켰던 사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서는 "내가 죽거든 내 무덤 에 침을 뱉어라"면서
일체의 변명을 생략한 채 가슴을 뚫리고도 ´체념한 듯 담담하게´(신재순 증언) 최후를 맞은
 이가 혁명가 박정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