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용도 방

조선 왕실 여인이 쓴 히스토리

윤정의 일상 2008. 12. 7. 11:33
조선 왕실 여인이 쓴 ‘허스토리’






[한겨레] 장편 <물의 말>로 2001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정애(36·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씨가 소현세자빈 강씨를 주인공 삼은 역사인물소설 <강빈>(예담)을 내놓았다.

민회빈 강씨(1611~1646)는 병자호란 이후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9년 만에 돌아왔으나 귀국 두 달 만에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임을 당한 뒤 이듬해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뜬 비운의 인물이다. 실록에는 ‘성품이 흉험하고 행실이 방정치 못했으며 재물만을 탐한’ 욕심 많은 여인이자 ‘지아비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효성이 부족한’ 부덕한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의 말>과 <에덴의 서쪽> <죽죽선녀를 만나다> 등의 작품에서 선명한 여성주의적 기치를 치켜든 바 있는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실록이 감추거나 왜곡시킨 강빈의 참모습을 적극적으로 되살리고자 한다. 작가는 “황진이 같은 매력적인 예술가나 장희빈 류의 요부가 주로 소설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뿐 여성 지도자를 다룬 역사소설은 찾기 어려웠다”면서 “비록 시대적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비전과 능력을 지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역사 속의 여성 지도자로서 강빈을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강빈 자신이 들려주는 성장과 결혼, 그리고 중국 볼모 시절과 귀국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길지 않은 생애 이야기와, 강빈의 둘째딸 경녕군주가 어머니의 행장을 기록하면서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다룬 또 하나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는 방식을 취한다. 강빈 자신을 화자로 삼은 이야기에서 그는 철없던 어린 시절부터 당대의 지배 이념인 남존여비와 여필종부에 의문을 제기하며 동생을 데리고 가출까지 감행할 정도로 독립적이며 모험심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내게 사내의 인을 강요하지 말라’

강화도를 함락하고 조선 조정의 항복을 받아낸 청나라 장수가 세자빈의 절을 요구하자 사간원 소속 관리는 강빈에게 ‘목숨을 버려 인을 이룰 것’을 종용한다. 이에 대해 강빈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원하여 애쓰는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주신 본성 중에 으뜸가는 본성이매, 나에게는 그것이 인이다. 나는 죽을힘으로 나의 인을 힘써 추구할 터이니 나에게 너의 인을 강요하지 말라.’(79쪽) 사내들이 지배하는 인의예지신의 유교적 덕목에 순순히 복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심양에 들어선 강빈더러 청나라 장수들이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라고 요구하자 조선 신하들은 이를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데 비해 강빈 자신은 오히려 자유롭게 여겨 반기는 데에서도 그의 ‘반골 기질’은 확인된다. 강빈의 이런 면모는 물론 일차적으로는 그의 개성에 속하는 것이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조선조를 지배한 위계적 유교 이데올로기의 억압 아래 신음하던 이들의 염원을 대신하는 보편성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소인 같은 천한 몸이 고향에선들 사람대접 받고 살았겠사옵니까? 꿈은 이곳에서도 꿀 수 있는 줄 아옵니다.”(108쪽)

서구문물 받아들여 사약 받아

비록 종내에는 강빈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지간으로 발전하지만, 강빈과 함께 심양까지 동행한 기생 장옥이가 오랑캐 땅에 끌려온 신세의 고달픔에 대해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한 말이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여성주의 또는 계급주의의 이름으로 맞서고자 하는 은근한 기백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 말은 강빈의 딸을 화자로 삼은 부분에서, 청화라는 이름의 무당이 피력하는 국가에 대한 생각과도 통한다: “나라라는 것은 남의 나라거나 내 나라거나 어찌하여 살리기 좋아하는 덕은 없이하고 뭇 생령을 죽이는 일에는 그다지 집착하는지 천것의 얕은 소견으로는 참으로 알 수가 없나이다.”(174쪽)

강빈에게 끝내 사약을 내린 까닭 중에는 청나라 시절의 그가 무역과 같은 돈벌이에 매달림으로써 남편 소현세자의 정신을 썩게 만들었다는 점도 포함되었다. 소설 속에서 이 대목은 여러 백성을 이끌고 남의 땅에 볼모로 잡혀 와 있는 지아비를 도와 백성들을 살리고 구하는 데 필요한 돈을 조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은 무역과 함께 농사일에도 손을 대려는 데 대한 강빈 자신의 변이다.

“본디 나라의 하늘은 백성이요 백성의 하늘은 밥이니, 밥을 하늘로 삼는 백성에게 밥을 배불리 먹이지 않고서 무슨 염치로 나라 섬기기를 바라겠사옵니까?(…)소첩은 처음부터 일하는 사람을 높이 대접하는 원칙을 고수했사옵니다.”(179~180쪽)

강빈의 또 다른 죄목은 천주학을 비롯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것. 이에 대한 강빈 자신의 설명은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적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연경에 와서 접한 기이한 풍물과 습속과 사상과 기술은 우리가 숭배한 하늘이 얼마나 편벽된 것이었는지 거듭 자각하게 했다. 대명이든 주자학이든 삼강오륜이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하늘을 의심하기 시작했다.”(220쪽)

소설의 적잖은 부분은 강빈 자신이 쓴 편지글, 그리고 둘째딸 경녕군주가 쓴 행장의 형식을 취한다. 남성들의 역사(history)가 아닌 여성의 역사(herstory)를 쓰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형식의 측면에서 반영하는 특성이라 하겠다.

모계의 탄생설화 상징

“내가 행장이랍시고 쓴 것도 실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어쩌면 내 후손들에게 보내는 편지일지 모른다. 나는 어머니를 쓰면서 내 꿈을 썼다. 운명을 벗어나고픈, 내 오래된 꿈을 썼다. 하지만 내가 써놓은 꿈에서도 나는 도처에서 운명의 굴레에 묶여 있다.”(122쪽)

경녕군주의 말이다. 소설 말미에서 출산의 순간을 맞은 그는 다시금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 저를 낳아주세요. 어머니, 저에게서 다시 태어나세요. 어머니, 저를 낳아주세요. 어머니, 저에게서 다시 태어나세요. 저를 낳아주세요.’(280쪽)

어머니와 딸이 서로를 낳고 서로에게서 태어난다는 이 착란적 진술은 모계의 탄생 설화이자 남성의 직선적·일방적 운행에 맞서는 여성의 원환적·쌍방향적 운동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소설 <강빈>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그 딸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역사”(‘작가의 말’)의 문학적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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