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대부분 보양식을 즐겨 먹는 한국 사람들은 한약, 특히 보약에 대해 호의적이다. 무더운 여름철 삼계탕을 먹더라도 메뉴판에 한방삼계탕이라고 적혀있는 메뉴를 선호하고 족발이나 설렁탕에도 그 ‘한방’이란 말이 들어가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더 믿음을 갖는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한방피자나 인삼햄버거가 나올지도 모른다.
이런 한방에 대한 호의는 일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삶에서 한약과 보약으로 효과를 봤던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구전에 의해 그 믿음의 무게가 실리고 또 지속적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보약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보약은 무조건 좋다’라는 막무가내식의 믿음은 큰일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녹용의 경우 아무리 좋은 보양약재라고 하더라도 허열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신중하게 처방을 해야 한다. 또 고약한 스트레스를 오래 겪은 후 진이 빠지고 주로 잠잘 때 배게를 흥건히 적실 정도로 땀을 흘리며 점점 쇠약함을 느끼지만 반대로 머리쪽으로 미칠듯이 열이 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녹용을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 좋다는 녹용도 어차피 일개의 약재일 뿐 환자의 증상에 맞아야 보약이지 증상과 반대의 약성이라면 심하게 말해 사약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잘못 먹으면 궁합이 좋지 않은 한약 베스트 5
01. 가장 만만한 보약 ‘십전대보탕’
시골 다방의 십전대보차에서부터 홈쇼핑, 일부 약국이나 한의원에서 아예 미리 달여 놓고 말 그대로 ‘판매’를 하고 있는 십전대보탕은 한의학 이론 상 기와 혈을 동시에 보해주는 기본적인 처방이다. 하지만 그 처방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 떨어진 기와 혈을 동시에 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처방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소건중탕(어릴적 허약한 아이에게 먹이라고 TV에서 선전하던 ‘키디’의 원방)과 다들 잘 알고 있는 쌍화탕 등의 처방이 모두 들어간 약 정도로 볼 수도 있다.
어찌보면 먹기에 가장 만만하고 무난한 처방이라고 볼 수 있지만 처방의 성질로 보아 열을 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감기를 앓고 있거나 고혈압환자라면 자칫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우를 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십전대보탕 역시 유명세만 믿고 만만하게 볼 처방은 절대 아니다.
02. 떠먹는 보약 경옥고
요즘의 보약은 점점 한약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사실 비타민 복합제 한 통 정도 없는 가정집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보는데 아마도 한약재로 구성된 보약은 그 가격도 가격이지만 가정 내에 상비해 놓고 간단하게 먹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예로부터 내려오는 고가의 보약들은 그때그때 달여서 먹는 약보다는 떠먹는 고 형태나 알약 즉, 환약의 제형이 더 많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경옥고’인데 이 경옥고는 달짝지근한 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기력이 쇠하는 어르신께 가장 맛있는 보약으로 특별한 날 즉, 명절이나 생신 등의 선물로 인기가 가장 좋다고 한다.
경옥고의 처방은 의외로 간단하다. 생지황, 인삼, 백복령, 꿀의 약재들이 주가 되는데 이 떠먹는 고약인 경옥고는 만드는 과정이 정성과 인내 그 자체이다. 3일 동안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어 중탕을 한 후 다시 차가운 우물물에 하루 담가 두었다가 다시 또 하루를 달여서 물기가 없어지면 꺼내는데 동의보감에 언급된 대로라면 이 후 천지신명께 먼저 한 두 숟가락 바친 후 하루에 두 세 번씩 떠먹어야 한단다. 물론 현대에는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재래식 수작업을 고집하는 장인들을 간혹 만나면 그 정성이 대단하다.
이 약을 먹으면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을 산다고 동의보감에는 기록되어있지만 고혈압환자에게는 그리 좋은 약이 아니라고 한다. 갑자기 기운을 올리는 인삼 때문에 혈압이 올라갈 수 있고 꿀이 다량 들어가기 때문에 달달하고 맛나기는 하지만 당뇨 환자에게도 권할 수 없기 때문이다.
03. 최고의 보약 ‘공진단’
화접몽 한의원 오철 원장의 경우 한의사지만 공진단을 맘 편하게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워낙 고가의 약이라서 어릴 적 선배 한의사의 한의원에 들렀다가 선배가 선심 쓰듯 주신 다섯 알의 공진단을 금덩이라도 되는 듯 냉장고에 고이 보관해두고 하루 한 알씩 정성스레 씹어 먹어본 기억이 고작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약이 고가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향이라는 약재가 들어갔기 때문인데 사향은 사향노루의 배꼽과 생식기 사이에 있는 낭에 차있는 분비물을 건조시킨 것으로 사향노루 한 마리 잡아봤자 기껏해야 몇 십 그램 정도밖에 얻기 힘들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사향노루는 천연기념물이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향이 강하고 강심작용과 흥분작용이 있어서 예부터 최고의 보약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실제로 공진단의 위력을 맛 본 일부 있는(?) 사람들은 꾸준히 이 보약에 의존하곤 하는데 현재 시골에서 개원하고 있는 한의사친구가 공진단 몇 알을 친한 동네 치과 원장님께 기운 내라고 줬더니 다음날 그 원장 왈 “무슨 마약 같은 거에요? 이상하게 피곤하지가 않네”라고 했다면서 한 달치를 구해달라고 했단다. 다량의 녹용과 우황청심환 500개 정도에 들어갈 사향의 분량이 공진단 한 알에 들어가 있으니 인체 십이경락의 막힌 것을 뚫는 것은 최고라고 하겠고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트러블, 탈모, 갑갑증, 노화로 인한 불편함 등 우리 인체의 음양의 조화가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 잡는 최고의 보약이라 하겠지만 가격으로 보자면 1%만를 위한 보약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보약이 바로 공진단이다.
공진단은 특히 술자리가 잦은 사업가에게 최고의 처방이라 하겠지만 이 역시 꿀이 다량 들어갔기 때문에 혈당에 문제가 있는 환자라면 꼭 한의사의 진단을 받는 후에 복용하는 것이 좋겠고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일부 부풀려진 상업성 광고에는 현혹되지 않는 게 좋겠다. 차라리 중풍 예방에는 청심환이 더 정직한 처방이다.
04. 자하거(태반)
이미 수없이 많이 노출되어있는 태반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워낙 미용과 ‘간 기능’ 쪽에 효능은 이미 입증되어 있고 가장 무난하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써도 되는 약재 중의 하나이다. 다만 태반은 인체에 들어가서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의 기능을 너무 증폭시키는 효능이 있으므로 종양이 있는 경우 즉, 암환자는 그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보고가 있다. 말 그대로 종양까지 키워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태반이라는 단어가 넘쳐나는 곳이 바로 피부, 미용 쪽인데 대부분의 이쪽 상품들은 사람태반이 아닌 동물의 태반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 원료가 어떻게 공급되었는지 불확실한 경우가 말 그대로 태반이기 때문에 공인을 받은 제품이거나 전문의약품이 아니라면 절대 사용을 금해야 한다.
05. 웅담은 보약인가?
과거 중국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꼭 사오는 게 있었다. 바로 북한산 우황청심환과 곰의 쓸개즙을 건조한 분말 즉, 웅담인데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좀 말리고 싶다. 한의사에게 웅담이 무슨 효과가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기 때문이다. “웅담이요? 열 내리는 약입니다. 감기로 인한 열 같은 게 아니구요. 십이경맥 중 주로 간경에 습열이 있을 때 그 열을 내리는 약이에요.” 그렇다. 웅담이란 것은 기운을 내주는 약도 아니고 빈혈을 치료해주는 약도 아니고 그냥 스트레스로 인해서 간 기능계에 열이 있을 때 그 열을 내려주는 약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너무 허해서 손발과 아랫배가 찬 여자들에게는 절대 금해야 하는 약재이기도 하다.
물론 피로회복 자양강장에 우루X 같은 광고에 기대어 간경의 열을 내리는 약이 피로를 덜해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웅담이란 것은 수많은 치료약 중에 하나일 뿐 사시사철 구비해놓고 먹어도 좋은 그런 약은 아님이 틀림없다.
보약이란 것은 말 그대로 허한 것을 보해주는 약이다. 닳아 없어진 것을 채우는 약이고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불편해지는 것을 막는 약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약이다. 한약이란 것은 진단에 의해서 한의사가 처방을 해야 그 효과가 있는 것이고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냥 허한 것 같아서 잠깐 먹을 수 있는 한 철 보양식이 아니라는 것.
실제로 환자들을 보면 몸에 좋은 것 같으면 왕창 사다가 일 년 내내 달여 먹는 사람들을 간 혹 보는데 그렇게 무모한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없던 병을 키우기 일쑤이고 바로잡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덧붙이자면 인삼 달인 물을 한 가족 모두가 사시사철 냉장고에 넣어 놓고 마시는 것처럼 무서운 건 없다. 그 이유는 가까운 한의원에 가서 물어보시길.
화접몽 한의원 오철 원장은 보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비록 한약이 TV홈쇼핑에서 팔리는 어처구니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한약은 약이다.
약이란 것은 환자의 상태를 백분 파악한 전문가 즉, 한의사에 의해서 처방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약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일개 상품으로 한약을 구입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한약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며 그 약이 아무리 비싼 보약재들로 구성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보약이 아니라 단순히 말린 풀과 뿌리들을 달여 놓은 ‘맛없는 음료’일 뿐이다. 보약과 사약의 근본은 같다. 다만 복용을 하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효가 극과극으로 나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