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스크랩] 대통령의 눈물

윤정의 일상 2009. 6. 17. 20:24

    서독 뤼브케 대통령과 박대통령 지난 좌파정권 10 년 동안 참 변한 것도 많은가 봅니다. 4일자 신문을 보니 2003년 4월22일에서 2004년 10월26일까지 약 1년 6개월간 육사 43대 교장을 했던 김충배 중장이 2004년 1월에 숨이 턱 막혔다고 하는군요. "장교가 되겠다고 사관학교를 지원한 학생들이 이 정도라니…." 그 해 육사에 들어올 가(假)입교생 250여 명에게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인가?' 하고 무기명 설문조사를 했더니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대답을 했고, '북한'이란 대답은 33%에 그친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서는 안되겠다고 하여 '군(軍)의 대안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하며 직접 '눈물의 강의'를 하면서 그 내용이 '어느 노 군인이 젊은이에게 전하는 글' 또는 '육사교장의 편지'로 인터넷에 퍼지기도 하였지요. * *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때 미국은 한국에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 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 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 명을 모집하는데 4만6천 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된 사례로 있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 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 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할 수 있을까?" 해서 붙여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 군에게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 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 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을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 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 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 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 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이때, 한국은 76불 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 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 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투수당 일부로 경부 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 세력으로 폄훼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던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 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 선에서 피를 흘렸던 우리 국군 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할 자격이나 있는가?... 그대들이 그 때 땀 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 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 구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주면서 함께 가 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 그런데 이 글은 김충배 육사교장의 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예비역 장성 김유복씨가 작성하여 '박대통령의 눈물'이란 제목으로 2006년도에 '로터리 코리아'에 기고한 글임을 참고로 알려 드립니다. ^ 위를 클릭하셔서 신문기사 내용을 참조바랍니다. The John Dunbar Theme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눈물   

1964년 당시 우리나라는 먼 곳을 비행할 만한 비행기가 없던 탓에 서독정부가 빌려준 비행기로 박대통령은 서독 여정 길에 오른다. 그 비행기는 정기항로를 나는 여객기여서 여러 기착지에 착륙해야만 했다.

 

12월6일 밤 9시35분(한국시각 12월7일 새벽 1시15분) 출발 ⇒ 인도의 뉴델리 공항 ⇒ 파키스탄의 카라치 공항 ⇒ 이집트 카이로 ⇒ 이탈리아 로마 공항 ⇒ 서독의 프랑크푸르트 공항 ⇒ 본 공항 도착. 

서울을 떠난 지 무려 28시간 여만에 도착한 것이었다.

 

          뤼브케 대통령(70세)과 박대통령(47세) 의장대 사열 (서독 본 도착)
 ...........................................................................................................................................

 

1964년 12월10일 아침, 본에서 중요 일정을 모두 마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의 안내로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루르 지방으로 출발했다. 경찰기동대 사이카들이 선도하는 차량행렬은 라인강을 따라 아우토반을 달렸다. 

 

오전 10시 40분, 박대통령이 탄 차가 루르지방의 함보른 탄광회사 강당에 도착했다.

인근 탄광에서 근무하는 광부 300여명, 뒤스부르크와 에센 간호학교에서 근무하는 간호원 50여명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했다.  검은 탄가루에 찌들린 광부들이지만 모두 양복 차림이었고 격무에 시달린

간호원들도 색동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박대통령 일행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박대통령과 육영수는 서독 실정을 잘 알던 통역관 백영훈교수로부터 서독에 파견된 우리 광부와 간호원들이 초과근무를 자청,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고향에 송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차중에서 이미 들었던 터였다. 

 

박대통령과 육영수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벌써 육영수 여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간호원중에도 조국의 대통령 부부를 보아서인지 더러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대통령 일행이 강당으로 들어가 대형 태극기가 걸린 단상에 오르자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박대통령이 선창하면서 합창이 시작됐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한 소절 한 소절 불러감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는 소리가 더 커져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 대목부터 합창소리가 목멘 소리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광부와 간호원들에게는 떠나온 고향과 조국 산천이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젊은이들이 타국에 와 고생하는 현장을 본 박대통령의 음성도 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마침내 마지막소절인  "대한사람 대한으로......" 에서는 더 이상 가사가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눈물을 쏟아냈다.밴드의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풀더니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은 원고를 보지 않고 즉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박대통령의 연설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울음 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의 전이로 말미암아 박대통령 자신도 울고 말았다. 육영수 여사도, 수행원도, 심지어 단상옆에 서 있던 뤼브케 서독 대통령까지도 울었다. 

 

결국 연설은 어느 대목에선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강당안은 눈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행사도중 눈물을 닦으시는 육영수 여사)

 

박대통령은 참석한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파고다 담배 500갑을 전달한 뒤 강당 밖으로 나왔다. 30분 예정으로 들렀던 광산회사에서 박대통령 일행이 강당 밖으로 나오는 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함보른 광산 회사측에서는 박대통령에게 한국인 광부가 지하 3000m에서 캐낸 석탄으로 만든 재떨이를 기념으로 선물했다.  박대통령과 육여사는울어서 눈이 부어시선을 바로 두지 못했다. 

 

광부 기숙사를 둘러보고 차로 향하자 어느새 수백 명의 우리 광부들이 운집해 있었다.

몇 몇은 작업복 차림에 갓 막장에서 나와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였다.

박대통령 가까이 있던 광부들이 검은 손을 내밀었다. 

 

"각하, 손 한번 쥐게 해 주세요." "우리를 두고 어떻게 그냥 떠나시렵니까?" 

 

경호원들이 몰려드는 광부들을 제치고 박대통령 일행이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르자 광부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안녕히 가십시오!" 

 

박대통령의 차량은 뒤스부르크의 데마크 철강회사를 향해 아우토반에 올랐다.

박대통령은 차중에서 눈물을 멈추려 애쓰고 있었다. 나란히 앉은 뤼브케 대통령이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자기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칠순 노인인 뤼브케 대통령이 사십대 후반의 젊은 대통령의 눈물을 직접 닦아주었다. 그리고 우정어린 격려를 했다. 

 

"울지 마십시오. 잘사는 나라를 만드십시오. 우리가 돕겠습니다.분단된 두 나라가 합심해서 경제부흥을 이룩합시다.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경제 건설뿐입니다." 

 

함께 탔던 백영훈 통역관도 울먹이며 겨우 통역을 마친 뒤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고 한다.

 

                                     강당에 입장하시는 박대통령

 

                         광부들의 숙소 방문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1964.12.9) 수상관저 (사진 가운데 분이 백영훈 통역관)


 

                    서독 간호학교 유학생 출발인사차 예방1(65.3.24) 청와대


 

                서독 간호학교 유학생 출발인사차 예방2(65.3.24)  청와대

 

 

ps. 이런 이유로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을까요??

서독에서 고생하는 간호학교 유학생들을 위해서.. 고생하는 민족을 위해서 아닐가 합니다.

독제적이긴 했지만. 우리나라를 짧은시간내에 가장빠르게 발전시킨 장본인이기도하죠..

저는 이시대에 살지 않아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독재적이지만 나라를 살렸고.. 강제적이지만... 나라를 바로 잡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무리 욕하더라도 지금까지 대통령중 최고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거 같습니다.~

내용출처 : http://cafe.daum.net/amtb

출처 : choidk765
글쓴이 : choidk765 원글보기
메모 : 대통령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