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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일순(나락 한알 속의 우주)

윤정의 일상 2009. 8. 12. 14:02

《나락 한알 속의 우주》(장일순,녹색평론사,1997,5000원)

 

 

"녹색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생산하고 유통시켜 온 소중한 자산이다. <녹색평론>이라는 잡지가 있다. 격월간이니 한 해 여섯 번 낸다. 지난해 100호를 넘어섰으니 20년 가까이 ‘녹색’이란 말뜻을 만들고 유통시켜 왔던 셈이다. 이 속의 녹색은 정부가 쓰는 녹색과 많이 다르다. 한데도 정부가 남발하듯 녹색으로 성장이 되고, 녹색으로 아이티가 되고, 건설도 녹색으로 되는 식이라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 유통되던 녹색이란 말의 함의와 맥락, 그리고 비전은 다 망가져 버린다. 이것은 곧 ‘사회적 자본’이 유실되는 것을 뜻한다."(배병삼 <한겨레>2009.1.17)

 

나의 <녹색평론>과의 인연은 어느 스님의 쓴 책을 읽다가 거기에 실린 <녹색평론>이란 이름을 보고 구독하게 됐다. 스님 얘기로는 책이 홍수처럼 출판되는 이 시대에 그 많은 책들을 다 볼 수 없지만 <녹색평론>만큼은 꼭 본다고 했다. 그 말에 이끌려 책을 보게 됐는데, <녹색평론>에서 다시 장일순(이하 선생)의 《나락 한알 속의 우주》를 접하게 됐다. 책 표지에 "2000년 여름"고 표기된 것을 보면 2000년 여름이 책을 통한 선생과의 첫 인연인 셈이다. 선생은 1928년 태어나 1994년 작고(67세)했기에 직접 뵙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의 평소 행적이 담긴 책들을 보고(읽고) 그만 "장일순교 신도"가 되 버린 것이다.

 

사실 선생은 생전에 책한 권 낸 일이 없다. 여기 소개하는 책《나락 한알 속의 우주》역시 지난 1997년(5.31)<녹색평론>에서, 선생이 생전에 발표한 글과 강연과 대담등의 내용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부제를 '무위당 장일순 이야기 모음'라 붙였다. <책 머리에>에서 이현주는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세계 4대 성인이라고 배운 네분(석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모두 생전에 글 한줄 남기신 바 없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글 쓰지 않으신 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요, 신통한 것은 그 네분 모두 살아 생전에 참 꽤 말이 많으셨다는 점입니다. 우리 선생님도 그러셨지요. 한번 말씀을 내어놓으시면 흐르는 강물처럼 막힘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쏟아놓으시고 맨 뒤에 혼자 남아 당신의 그 참담한 허탈을 남몰래 삼키셨던 거지요."고 말했다. 

 

선생의 행적중 대표적인 것인 도산 안창호 선생이 평양에 설립한 대성학원의 맥을 계승코자 원주에 대성학원을 설립한 것과 유신정권 치하에의 민주화운동 전개 그리고 도농직거래조직인 <한살림>의 창립 등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보라. 선생이 남긴 생명사상은 지금도 세상의 쭉쟁이 모두 쓸어내며 도도히 흐르고 있잖은가. 몇몇 지인들의 기억을 통해 선생의 모습을 읽어 본다.

 

"생각해보면, 무위당 선생은 내면적으로 진실로 자유와 행복을 누린 분이 틀림없다. 선생이 어떤 경로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사정은 우리가 알기 어렵지만, 그러한 자유와 행복을 가능하게 한 '공경의 정신'이 본질적으로 '근원적인 겸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위당 선생이 생전에 글쓰는 일, 책을 펴내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도,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근원적 겸손'에 연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김종철 <녹색평론>발생인) 그리고 이경국(전 신협 사무총장)은 "1980년대 이농현상이 심화되고 도시에 살려고 오는 분들이 많아서 농촌이 피폐된 시대에는, 농민과 도시민의 만남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직거래 운동, 먹을거리의 환경개선운동,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혐동운동의 의미로 생각됩니다."고 말했다. 최종덕(상지대 교수)은 "장일순 사상은 유불도(儒佛道)에 이미 있었던 전통의 생명사상을 현대의 새로운 체험에 맞추어 재발굴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이론적 작업에 머물지를 않고 실천적 삶의 방향을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고 밝혔다.       

 

나와 같은 비슷한 시기에 선생을 알게 된 사람이 있다.  재야 철학자 고제순 씨가 바로 그 사람. 그는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나락 한알 속의 우주》라는 한권의 책을 통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가 2000년 12월 어느 날 이었다. 나는 철학과 인연을 맺은 이후 이십년 이상 철학이란 무엇이며, 철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고, 철학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메타철학적인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오랫동안 물음으로만 남아있던 이러한 문제들이 무위당 성생님의 사상과 삶을 만나면서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이 비로소 하나 둘 풀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책속에 실린 선생의 생상한 흔적이 모두 귀한 말씀들이다. 그래도 내맘에 든 구절을 든다면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예수 탄생>에 실린, 법안선종(法眼禪宗)의 선시한 편이다. 이 시는 참 많이도 울궈 먹었다.(내 막글에 인용키도 했고, 막그림의 화제로 차용키도 했고, 껌처럼 화두처럼 씹어 먹기도 했고) 

 

"천지여야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라." 

(하늘과 땅은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니라.)

출처 : 無人山房
글쓴이 : 南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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