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의 용화사에 모셔져 있는 이 불상은 광배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높이 1.98m의 석불입상으로 마멸이 심해서 세부수법을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다.
불상의 머리는 확실히 구별할 수 없지만 민머리처럼 보이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얼굴은 길고 풍만한 모습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지만 단정한 인상이다. 체구는 단정하며, 양 어깨에 걸쳐 있는 옷자락은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 역시 많이 마모되어 가장자리에 새겨진 불꽃무늬만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입상은 전체 높이 1.98m, 불상 높이 1.48m로 광배(光背)와 같은 돌로 조각된 통일신라(統一新羅) 말기(末期)의 석불입상이다.
파멸이 심하여 세부표현을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肉계)를 묘사했고 얼굴은 길고 풍만하며, 이목구비는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 체구는 단정하면서 다소 경직되고 현실적인 면이 강해진 사실양식을 보여주어 통일신라 말기의 석불입상 경향을 알려 주는 좋은 예로 생각된다.
보호각 밖에 있는 연화대석(蓮花臺石)과 석탑재(石塔材) 등과 함께 상주시 남성동 용화전 안에 있던 것을 1982년 10월 현재 위치로 옮긴 것이다. 화강암질의 넓은 돌 2장에 높이 1.27m의 주악상(奏樂像)과 높이 1.23m의 공양상(供養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주악상은 왼쪽을 향하여 비파(琵琶)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화관을 쓴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한 발을 앞으로 내밀어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주하는 자태는 약간 미소를 머금은 단아한 표정이며, 비파를 타는 두 손의 표현은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어깨에 걸친 옷은 바람에 날리듯이 좌우로 구불거리며 흩날려서 매우 율동적이다. 아랫도리에는 주름이 져 있으며, 윗도리 속에서부터 늘어지는 끈이 좌우로 바람에 날리듯 표현되었다.
공양상은 오른손으로 연꽃 봉우리를 받쳐들고 오른쪽을 향해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자연스럽고 동적으로 묘사되었다.
두 석상이 어디에 쓰였던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옷차림은 당시 복식(服飾)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며, 만들어진 연대는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천인상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8세기 말경)에 조성된 측면상(側面像)으로 왼쪽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은 비파(琵琶)를 타고 있으며, 오른쪽 공양천인상(供養天人像)은 보주(寶珠)를 받들고 미소 어린 얼굴로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생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천인상은 원래 석탑(石塔) 기단(基壇)의 일부로서 주악천인상은 높이 129cm, 너비 123cm이고 공양천인상은 높이 127cm, 너비 112cm이다. 이들 천인상은 보호각 밖에 있는 연화대석(蓮華臺石)과 석탑재(石塔材) 등과 함께 본래 상주시 남성동 용화전(龍華殿) 안에 있던 것을 1982년 10월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