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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애국가(안익태)

윤정의 일상 2008. 7. 25. 08:44
 





音樂鑑賞

韓國 幻想曲(愛國歌)

安益泰 作曲







 2004. 11. 15







발표자 : 金    晟    三

   

 미 산 중 학 교


韓國 幻想曲(愛國歌)

安益泰 作曲


                                               김 성 삼

( 미산중학교 교장 )

 

 목   차

 

 

 

           Ⅰ.    한국  환상곡

           Ⅱ.    애   국   가

           Ⅲ.    기        타


Ⅰ. 한국 환상곡


1. 작곡자 : 안익태(1906~1965)

  ․ 1906. 12. 5 평양 출생. 8세 때 바이올린으로 학예회 출연

  ․ 1926. 평양 숭실 중 졸업, 학교 오케스트라 단원, 음악부장 중 1년 때        첼로, 작곡 전공  숭실 전문학교 졸업

  ․ 1930. 숭실 학교 교장 마우리 박사 권유 일본유학 “음악으로 애국하         라.”(17세) 일본 입학시험 - 거의 백지(일본어를 잘못함) 그러나 면접        시에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을 잘했으므로 합격, 국립음악고등학교 졸        업 (첼로전공) 귀국. 한 달만에 도미 (독립전에는 안 오리라.) 센 프란        시스코 도착(악기소독)반대 감옥.

      감옥에서 독주(죄수들 조용히 경청). 밖에서 간수도 경청, 아침에 간수        가 와서 사과 (세관에 건의), 간수들 성금, 사과, 간수 집에서 식사, 가        족을 위한 연주. 센프란시스코 한인교회(태극기 처음 봄) 황사성목사        님 만남. 한인교회 예배 시간 묵도 후 영국민요에 의한 애국가제창을        듣고 애국가 작곡을 결심함

  ․ 1932.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학교 졸업 (지휘전공)

  ․ 1932-1934. 부다페스트 음악원 수료(작곡 전공)

  ․ 1934-1945. 독일 악성 리하르트 스트라우 12년 사사 - 작곡과 지휘법        전공

  ․ 1938-1965. 지휘자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더불린 국립교향악단. 베       르린 필하모니 교향악단. 비엔나 필하모니교향악단. 파리음악원교향악       단. 파리 콩세르 바투아르교향악단.  부다페스트교향악단. 부카레스트       교향악단. 소피아교향악단. 로마심포니교향악단. 베오그라드교향악단.        바로셀로나교향악단. 마드리드 필하모니교향악단. 런던 로얄 필하모니.       로스 엔젤레스필하모니, 일본 NHK 등 200여 유명 오케스트라를 지휘       하여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침.

  ․ 1965. 9. 17.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서거.

  ․ 1977. 7. 유해 환국, 국립묘지에 안장.

   

2. 주요 작품

    애국가, 교향적 환상곡(코리아 환타지), 교향시(논개, 강천성악) 등 9개      의 대곡 작곡. 교향시  1부 비원의 경주, 2부 극치의 석굴암, 3부 비경      의 해인사, 4부 비창을 구상하던 중 완성을 보지 못하고 불귀의 몸이        됨. 


3. 악곡해설

    교향적 환상곡 <한국>은 작곡자가 이 작품에 쏟는 집념과 정열, 그리고     오랜 착상과 구상, 또한 작곡에 소요된 오랜 시간적 흐름, 여기에 작품이     지닌 방대한 규모와 편성, 작품의 바탕을 이룬 작곡자의 역사관과 민족관     의 집대성이라는 점등으로 보아 명실공히 그의 대표작이다. 이 곡은 우      리 백의민족이 나라를 세우기 시작할 때부터 오늘의 독립을 쟁취하기 까     지의 민족의 발자취의 영광과 수난을 그린 역사적 대서사시로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국의 민족음악을 토대로 한 서정적인 부분으로 서두에 천     지를 진동하는 관현악의 울림으로(ff) 터지는 소리는 개국을 표시한 것      이며 곧 이어 우리 아름다운 금수강산 의 정경에서 호른의 평화스런 고     전적 멜로디가 흐르고 우리의 민요가락이 평화를 사랑하는 순박한 우리     민족의 심성을 묘사한다. 때때로 타령조의 멜로디가 섞이면서 농민들의      춤사위가 섞이기도 한다.

    두 번째는 일제의 압제하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암울한 모습을 묘사한      부분으로 평화롭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침노하는 일제에 눌려 곡상은     무겁고 침통하게 흐른다. 약소 민족으로서의 울분과 저항속에 수많은 애     국지사의 죽음으로 진혼의 슬픔이 계속된다.

    세 번째에는 광복의 기쁨을 맞는 애국가의 합창부분으로, 애국가를 4절     까지 조를 바꿔가며 소리 높여 울릴 때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우리마음을 사로잡는다.

    네 번째는 6.25동란으로 인한 처절한 동족간의 싸움을 묘사한 부분으로     선율은 또다시 슬픔으로 변한다. 「무궁화 삼천리 나의 사랑아, 영광의      태극기 길이 빛나리. 금수강산 화려한 나의 사랑아」만세와 함께 대단원     의 막이 내린다   

민족적 긍지가 이 작품을 낳게 했고, 작곡자의 애국적 충정의 발로에서 민족의 슬기와 강인한 의지를 세계 만방에 외치고 싶은 충동이 민족의 절규를 대변하게 된 것이다. 합창과 관현악으로 구성된 이 교향적 환상곡 <한국>은 1935년 커티스 음악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일부분을 완료 한 후 1936년 베를린에서 현재 불리는 <애국가>를 후반부터 첨가하여 완성한 곡이다. 이 곡은 1938년에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영국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초연 되었다. 그리고 8․15 해방까지를 다루었던 내용에다 6․25후에 다시 민족 수난인 한국 동란의 역사적 과정을 추가하여 곡을 완결한 것이다.



4. 악곡구성

(1) 개국, 아름다운 강산

  첫머리에 천지를 진동하듯(ff) 개국을 알리는 전 관현악의 화음에 의한 음향이 울리면, 곧 이어 호른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아름다운 강산의 정경을 묘  사하듯 흘러나온다.   




(2) 평화롭고 소박한 생활

  이 평화롭고 소박한 분위기는 전원적인 서정으로 이어져 플루트의 구성진   도라지 타령의 멜로디가 산뜻하게 흘러나온다. 다시 호른의 흥취 있는 주제로 시작되어 밝고 흥겨운 타령조로 바뀌고 이어서 춤곡의 분위기로 전개된다.




(3) 민족의 수난기

   그러나 평화로운 전원 풍경은 일제의 침략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민족 비   운의 암흑시대로 바뀐다. 우리 고유의 가락은 끊기고 민족의 저항과 투쟁이   시작된다. 독립을 위한 처절한 항거가 계속되고, 전 관현악의 강한 음향이   분위기를 더욱 장엄하고 처참하게 만든다. 3․1운동의 민족의 절규와 함성이 천지를 진동한다. 행진곡풍의 나팔소리와 함께 애국가가 힘차게 불리어지나 강압에 점점 흩어져 사라진다. 이 독립 투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애국자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진혼곡이 아악의 정취로 연주된다.




(4) 독립의 쟁취

  민족의 독립 투쟁은 의지 굳게 다시 일어나 우렁찬 합창으로 만세를 외치   며 여기서 애국가를 소리높이 외친다.  8․15 해방의 환희와 감격을 외치   고 독립의 쟁취를 선언한다.




(5) 시련의 장송곡

 우리 강산은 다시 공산군의 남침으로 민족 비극의 암운 속에 시달리게 된   다.  6․25 동란에서 조국 수호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진혼을 위한 무거   운 장송곡이 흐른다.

                       


(6) 재건

 전체 민족의 애국가 합창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면서 강산을 뒤덮는 가운    데 점차 절정에 다다라 종결부로 곡이 끝난다.



 Ⅱ. 애국가의 작곡배경



1. 작곡 배경

  ․ 192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 교회 황사성 목사에게 애국가 가사 4       절을 구함.

     (이때, 도산 안창호 선생 이틀씩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며 작사했다는        말을 들음, 특히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라는 구절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음) 황사성 목사님과  작별할 때에 만년필을 선물로 주시며 “이 만년필로 훌륭한 애국가를 작곡해 주시오.”

  ․ 미국에서 전반부 8마디 작곡 후 5년간 뒤로 미룸.

  ․ 1936년 6월 초순 백림에 온지 2개월 째 어느 날 아침 꿈결에 귓전을        스치는 악상이 떠올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후반부(후렴) 8마디를        완성함.

  ․ 이미 작곡 한 한국 환상곡에 애국가를 추가함.


2. 애국가의 순례

 

  ․ 192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 황사성목사님께로 애국가 가사를

     받음(안창호선생이 3일간 목욕재개하고 만들었다고 전해들음).

  ․ 1936년 독일 백림에서 완성함 - 샌프란시스코에 원본을 보냄.

  ․ 한인 교회에서 황사성 목사 선창, 부인 반주로 개창식 가짐.

  ․ 미주 교포들 사이에 널리 퍼짐, 교포들의 주간지인 새한민보에 보도됨.

  ․ 대한 국민회에서 대량인쇄, 중국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발송.

  ․ 시베리아, 만주 - 각지에 나와있는 동포에게 전파 - 1942년 미국 전시       정보국 ‘새 동아의 빛 ’이라는 방송에서 방송시작과 끝에 1회씩 연주        함.

  ․ 해방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음.

  ․ 한국환상곡이 1936 ~ 1948년까지 15회나 해외에서 연주됨(우리 발음       으로)

  ․ 1948년 미군정에 벗어난 우리 정부가 정식으로 국가로 채택함.

  ※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도산 안창호 두 분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음.

    

3. 세계 올림픽과 손기정

   1936년 백림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에게(당시는 일본국적으로 출전)    찾아감.

  한국 선수에게 애국가를 가르침(일본감독의 눈을 피해 건물구석에서)15일    후 마라톤에서 1등 손기정, 3등 남승룡. 일장기 게양, 일본국가 연주, 마음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음.

  응원석 한편에서 젊은 청년의 지휘 하에 재독 한인들이 목이 터져라 부른    노래가 애국가이며 지휘자가 바로 안익태 이었다.   



Ⅲ. 기 타


1.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선생을 찾아감. 문밖에서 기다림. 승용차의 문을 열어주고 인사하며 자기 소개를 했으나 냉대함.

정원 연못에 빠진 스트라우스 선생의 손녀딸을 구출. 유모의 억울한 주장.

2층 베란다 창문에서 모든 것을 지켜봄. 제자가 됨.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지휘자가 됨(스승의 병환으로 인함) 연주회 스승이 참석 매우 만족. 수제자가 됨. 유럽 구라파등 3년여의 스케줄을 인계 받음.  

1940년 크리스마스시즌 독일 백림(베를린)에서 독일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 독일정부에서 연주상황을 홍보영화로 제작 전 세계에 보냄. 이로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이름을 날림.

1942년 로마 심포니 정기 연주회 때 연주중에 무솔리니 입장,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연주, 음악이 끝나고 무솔리니가 직접 무대로 올라와 안익태와 악수하면서 “위대한 일본이 낳은 교향악 지휘자, 오늘밤 그대의 성공을 축하하오.” 그 후 무솔리니 히틀러 앞에서 코리아 환타지(애국가)를 연주하여 일본의 강력한 항의를 받음. 이때 안익태 선생의 대답은 “비록 힘이 없어서 나라는 일본에게 합병 당했지만 음악은 합병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독일에서 추방당함.

1949년 스승이 위독하다는 전보 받음. 연주회를 취소하고 달려갔으나 스승의 꾸지람. 당신이 지금 있어야 할 장소는 여기가 아니다. 다시 돌아와 연주를 계속하던 중 어느 날 연주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다 전보를 받음.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의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함을 애통해함.

2. 서울 국제음악제

 1962년 서울에서 국제음악제 개최.  1일간 26명의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참석. 대성황을 이루었으나 경제적, 운영 면에서, 등 비판을 많이 받음.

1963년 제2회 국제 음악회 개최.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습 중 악보행방불명, 단원 행방불명되어 대통령에게 요청 3군 군악대를 지원 받아  운명교향곡을 관악으로 연주 함. (경복궁 뜰에서 임시무대 설치) 그러나 대성공. 극구 칭찬.

N. H. K방송 관현악단의 연주제의를 받고 쾌히 승낙하고 첫 곡으로 논개   를 선택함. 이사회를 소집. 결국 연주함.

1965년 5월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으나 음악인들이 싸늘한 냉대 속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국제음악회도 이루지 못하고 세계적인 대 지휘자는 쓸쓸히 조국을 떠났습니다.

6월 런던 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진 후 연주일정을 다 취소하고 치료에 전념했지만 고국에 대한 아픈 사연을 가슴에 간직한 채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日帝의 살인, 약탈, 탄압 - 여기에 대항하는 한민족의 울분이 폭발한다. 이 항거의 한때가 잔잔해 지면서 명암이 질서 있게 전개된다. 살아남은 동포는 自由와 해방을 위해 숨져 간 수많은 英靈들을 위해 경건한 추모를.....  그러나 해방에의 길은 아직도 사납다.

 항거가 계속되는 동안 영광스런 그 날이 왔다. 승리는 찬가가 솟아난다. 애국가인 것이다. 고난과 압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는 백의민족만의 가락인 것이다.

 베토벤의 제9 교향곡의 형식이 도입된 이 曲은 한국을 묘사했다기보다 그 당시의 時點에서 본다면 조국의 未來像을 예언한 黙示音樂인 것이다.


3. 최초의 애국가

  대한제국의 애국가로 1902년에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에 의해 작곡되었다.

그는 우리나라에 초빙되어 서양식 군악대를 창설하고 각종 악기와 음악이론등을 지도하는 등 이 나라 양가의 기초를 세우는데 크게 공헌했던 에케르트는 고종황제의 홍범14조에 따라 국가를 작곡했으나 이 노래는 일반 대중이 부르기가 쉽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출처 : 으막세임님
글쓴이 : 으막새임 원글보기
메모 : 애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