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락

[스크랩] 소리꾼배우 오정해37

윤정의 일상 2008. 8. 14. 07:45

 

 

 

 

 

 


 


영화명  :  천년학 (2006)
감   독  :  임권택
출   연  :  조재현, 오정해, 류승용, 오승은, 임진택
개   봉  :  한국 | 드라마, 로맨스 |  2007.04.12 | 12세이상관람가 (국내) | 106분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에게 맡겨져 남매가 된 ‘동호’(조재현 분)와 ‘송화’(오정해 분). 서로의 소리와 북장단을 맞추며 자라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호’는 마음 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몇 년 후,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는 눈이 먼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 ‘송화’를 누나가 아닌 여자로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동호’...


‘송화’를 찾아 다시 한 번 그녀의 노랫소리에 북 장단을 맞추며 눈이 되어 주고 싶은 ‘동호’는 연인의 자취를 찾아 길을 나선다. 하지만 엇갈린 운명으로 얽힌 두 사람은 가슴 아린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로 자꾸 비껴가기만 한다. 그러던 중 ‘동’호’는 유랑극단 여배우 ‘단심’(오승은 분)의 유혹에 흔들리고 마는데. 차마 ‘동호’앞에 사랑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선학동 선술집 주인 ‘용택’(류승룡 분)의 한결 같은 외사랑도 뿌리치며 판소리가 ‘동호’인 듯 노래에만 열중하던 ‘송화’는 이 소식에 충격을 받아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용택’의 선술집을 찾아 온 ‘동호’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마음으로 만난 사람 - 배우 오정혜


“소리를 배우며 사람 도리를 배웠어요” 
 

 

‘천년학’의 송화 역, 소리꾼 연기자 오정해씨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주인공 오정해씨를 만난 건 영화가 한창 개봉 중일 때였다. <서편제> 이후 14년 만이다. 십여 년 전 결혼하여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더욱 원숙해진 소리와 연기로 돌아왔다. 그녀의 나이 어느덧 서른일곱. 눈 먼 소리꾼 송화 역이 예나 지금이나 그녀에겐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자연스럽다. 어린 시절, 소리꾼이 되어 겪었던 각고의 과정, 그리고 그렇게 원하던 연기자가 되기까지 그녀에게는 인생의 큰 스승, 명창 만정 김소희 선생과 거장 임권택 감독이 있었다.


 

 

 

소리꾼이며 연기자로, ‘평범한’ 생활인으로 행복한 오정해의 사는 이야기.


‘송화’ 역은 연기가 아니라 그냥 우러나온 것 오정해씨에게 송화 역은 그녀가 영화 속에서 입은 고운 한복처럼 잘 어울린다. 영화 속의 송화처럼 처연하면서도 기구한 삶을 살아서는 아니다. 하지만 결코 그 나이에 흔치 않은 혹독한 단련의 과정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큰 스승 곁에서 소리를 배우며 인내했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인간 오정해라는 그릇이 되고 송화의 내면으로 녹아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송화를 연기하되 연기하지 않았다”라 했던 모양이다. 오정해의 큰 스승인 판소리 명창 만정(晩汀) 김소희 선생(1917~1995)은 예술에서나 일상에서나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삶과 예술로 귀감이 됐던 최고의 명창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이면서 국창의 칭호를 받았던 만정은 “우선 사람이 돼야지 올바른 국악인이다”라는 것을 늘 강조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영희, 안숙선, 이명희 명창에 이어 오정해는 선생의 막내 제자였다.


“우리 선생님 첫 번째 조건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소리는 바른 사람이 바른 감정이 돼서 관객한테 감동을 주는 거지 내가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하면 가식이다,라고 하시며 호되게 교육을 하셨어요.” 오정해는 일찌감치 자기의 꿈을 찾아나설 줄 아는 당찬 어린아이였다. 연기자가 꿈이던 열두 살 소녀. 목포에서는 연기를 배울 곳이 없자 차선책으로 배운 것이 소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판소리, 가야금, 무용 등을 배우던 오정해가 김소희 선생을 운명적으로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제1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최연소로 장원을 했는데 그때 선생이 처음 심사를 맡았다가 발탁됐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방학 때마다, 고등학교 때는 아예 선생 집에서 기거하면서 소리를 배웠다. 그 과정은 사춘기 소녀 오정해에게는 혹독하리만치 엄격한 것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문안인사 드리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모든 걸 다 했어요.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지만 제 것은 제가 해야 했지요. 하지만 선생님 모시는 건 제자가 다 챙겼어요. 집엔 일년에 두 번 정도밖에 못 가고요. 집에서는 이부자리도 한번 개켜 본 적도 없고, 빨래 한번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근데 세탁기도 없이 겨울에도 손으로 빨래를 했지요. 명절 때 손님이 백 명 이상 와도 과일 깎고 차 끓여서 대접했어요. 강제로 있으라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소리가 좋았으니까요. 제가 모시는 선생님이 너무 존경스러운 분이었고요.”


 

고 김소희 명창과 임권택 감독, 두 큰 스승의 가르침


오정해는 명민했다. 어린 마음에도 김소희 선생의 손주뻘 막내 제자라는 것이 다시 오지 않을 영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단다. 소리가 좋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공부도 잘하고 소리도 잘 하고 몸 가짐 마음가짐 예절도 완벽한 걸 원하셨어요. 그래서 잘못하면 피눈물이 나게 야단을 치셨어요.”


한번은 대회 나갈 때 연습을 하는데 1~2시간 하다보니 감정보다는 기계적으로 할 때가 있었단다. 선생은 북을 거두더니 종아리 걷으라 하고는 피멍이 맺히도록 세 대를 때렸다. “늙은 선생은 2시간 이상 북을 잡고 가르치는데 너는 감정없이 소리 하면 되느냐고 호통을 치셨어요. 그때 대회 나가서 1등을 했어요. 어른 선배님들이 난 배울 때 북채로 맞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부러웠는데 때려주신 게 너무 감사했어요.” “힘들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한다.


일흔이 훨씬 넘은 노스승은 이런 제자가 대견했던지 같은 영화도 구해 보여주고 뛰어난 음식솜씨로 요리를 해주기도 하셨단다. 그 옥색갑사 치마저고리에 합죽선 들고 단정하고 우아하기 그지없었던 선생이 “빨간 립스틱을 바르라”며 주실 때도 있었단다.


 

 

 

“너는 혈색이 하얘서 핑크를 바르면 얼굴이 죽는다”면서. “그런 과정들이 다시는 살 수도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에요. 요즘은 그런 선생님도 안 계시고 그렇게 배우려는 학생도 없고, 이제 이 세상에선 볼 수가 없는 모습들이지요.” 연기자의 꿈을 간직한 채 소리꾼으로 단련되던 오정해에게 1992년 5월 남원에서 열린 ‘미스 춘향대회’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기회였다. 판소리 한자락 구성지게 뽑아내는 그녀를 본 임권택 감독은 그녀가 <서편제>의 송화 역에 적역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태백산맥> <축제> <천년학>에 이르기까지 오정해가 출연한 네 편의 영화는 모두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다.


 

늘 기도해주시는 어머니 생각하며 어려움 이겨내


<천년학>은 임권택 감독과 배우 오정해에겐 아주 각별한 영화였다. 감정을 짜내는 신파가 없는 사랑 영화,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 눈물을 ‘뽑아내는 설정’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천년학>은 칠순이 넘은 감독의 인생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


넘치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사랑과 장렬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죽음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매화 꽃 흩날리는 봄날, 임종을 앞둔 백사노인 곁에서 소실이 된 송화가 흥타령 ‘꿈이로다’를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영화 속의 송화는 눈물이 없는데 정작 오정해는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그 노래가 청승맞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요. 김소희 선생님께서는 흥타령 육자배기를 안 가르쳐주셨어요. 그런 걸 좋아하다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흐른다고요. 그런데 그 가사를 듣는 순간 우리 영화 주제라고 느껴지는 거예요.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감독님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마지막을 저렇게 보내고 싶어하시는 마음을. 두 마리의 학이 훨훨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인생을 훌훌 털고 학처럼 자유롭게 가고 싶은 감독님의 마음이에요.” 철들어 부모 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아버지 같은 존재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는 그녀에게 그런 감회로 다가왔다.


<천년학>을 가장 감명 깊게 본 사람 이 또 한 명 있다. 영화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대권도 마다하고 늘 시사회장이 아닌 영화관에서 줄 서서 표를 사고 관람한다는 그녀의 어머니다. “제가 힘들 땐 늘 친정어머니가 큰 힘이 돼주세요. 어릴 때부터 우리 정해는 잘할 거야, 최고가 될거야,라고 하셨는데 제가 자고 있으면 머리맡에서 정안수 떠놓고 항상 기도하셨던 기억이 나요. 저한테 주신 최고의 재산이 어머니의 기도예요.” 그녀는 어머니의 기대에 벗어나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한테 칭찬 듣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


객지에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소리를 배웠단다. 고되다 느낄 때에도 어머니가 알면 속상하겠지 싶어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의 싸움에 강하다. “엄마 아빠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부모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어요. 부모가 알아서 해주니까요. 근데 떨어져 있으면 아, 부모님이 있으면 이렇게 해줬을 텐데, 하다가 부모 마음을 알게 되요.


그러니까 부모 속상하게 하는 게 가장 큰 죄라는 것도 알죠.” 어린 시절, 가족이 그리웠기 때문일까. 그녀는 가족을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안다. 연기자 아내를 소리 없이 외조해주는 남편,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영화를 보고는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는 시부모님, 홀로 기도해주시는 친정어머니…. “집에 와서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게 자고 있는 걸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는 그렇게 소중한 작은 행복들을 잘 키워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걸 항상 체크해 보세요. 그럼 많아요. 아주 많아요.”

 

 

 

소리꾼 배우 오정해님은 197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국악학원에 다녔고, 중학교 1학년 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차지하면서 만정 김소희 선생의 제자가 된 뒤 판소리 교육을 받으며 국악예고와 중앙대 한국음악과를 졸업했습니다. 1992년 미스춘향에 뽑힌 것을 계기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천년학> 등 네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그동안 우석대 국악과 겸임교수, 뮤지컬 배우, 라디오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현재 원광대 동양예술학 박사과정에서 심청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1993년 대종상 신인여우상, 1995년 일본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여우주연상, 1997년 제3회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월간 마음수련 6月

출처 : 아들만 있는 부모
글쓴이 : 진현 원글보기
메모 : 소리꾼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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